본문 바로가기
먹는 이야기/요리

요리기록 2. 휘낭시에와 까눌레_나의 15년지기 그녀.

by eugeenie 2022. 3. 8.
728x90

 

휘낭시에와 까눌레

남편이 바빠서 오지 못하는 주말.
"결혼한 친구 집이 비는 게 흔한 일이 아니야" 라고 고향 친구를 꼬셔 집에 놀러오게 만들었다.

벌써 15년.
학원 한 달 같이 다닌, 스쳐지나가는 인연이었는데 이렇게 오래갈 줄은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누구랑도 잘 어울리는, 내가 봐온 15년 동안 한결같이 철 들어있던 친구는
뾰족뾰족 모난 내 성질머리도 잘 받아주고, 여전히 친구만 못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철든 지금의 내 옆에 여전히 있다.

수능을 50여일 앞두고 야자 째고 바다 보러가자는 내 부탁도(그 때는 저런 게 낭만인 줄 알았다. 물론 좋긴 했다),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있는 동안 놀러오라는 부탁도,
그리고 며칠 전 신랑 없으니 놀러오라는 부탁 역시 거절하지도, 멀어서 가기 귀찮다는 내색도 하지 않는 고마운 그녀.

나 뿐만 아니라 그녀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라면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 늘 불안한 나와 달리 늘 여유있게 상황을 볼 줄 아는 그녀는
여행 때는 여기든 저기든 어딜 데려가도 좋다했고, 유학 중 갑자기 기운 가세로 여행 자금이 부족할 것 같다고하자 선뜻 여행비용의 일부를 부담해 주기도 했다.

당연히 고마운건데 왠지 감정 잡고, 분위기 잡고 고맙고 미안함을 표현하기에는 낯간지러워 멎쩍은 고맙다- 정도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했다.

그래서 이번에 그녀가 우리 집에 온다 했을 때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고 싶었다.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싶었고, 우리 동네에서 제일 맛있다는 거 사주고, 단 하루뿐이지만 정말 편하게 놀다 가기를 바랐다.

"너 오면 아무것도 하지마. 내가 다 사고, 내가 다 해줄게"
"뭐야 로또라도 당첨된 거냐"

그렇게 그녀가 오는 날, 기차에서 내려 지하철 타고 온다는 그녀에게 족발 픽업하고 역으로 마중나가겠다고 했다.
걸음을 바삐 옮겨 그녀가 앉아있는 지하철 역사로 들어가서 한 달만에 반가운 얼굴을 마주했는데
어라, 그녀의 손에 뭐가 들어있다.

"자. 이거 너거야."
"이게 뭔데? 휘낭시에야?!!!"

휘낭시에.
지난 설, 그녀와 두 달만에 재회했을 때
휘낭시에가 너무 먹고 싶어서 휘낭시에 휘낭시에~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찾아 준 디저트 가게는 월화수 설 연휴로 대부분이 휴업이었고,
아쉽게도 지난 만남에서 휘낭시에는 먹지 못한 채 헤어졌다.

그 때 만나서 나는 휘낭시에가 좋다 까눌레는 별로다, 나는 까눌레가 좋다 휘낭시에가 오히려 별로다
취향 진짜 안 맞는다 우리 어떻게 친구하고 있냐며 디저트 얘기를 한참 했는데
사실 그 이후로는 사는 게 바빠 딱히 연락도 많이 하지 못해서 휘낭시에는 더 이상 우리의 대화 주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서 휘낭시에를 사온 그녀.
낯부끄러움에 티내지 못했지만 나는 실로 오랜만에 감동을 받았다.

"어디서 샀어? 서울에서 사 왔어?"
"아니, 도착해서 역 근처에 찾아서 갔어. 근데 휘낭시에 파는 데가 많이 없더라."

차라리 서울에서 사 왔으면 덜 힘들었을텐데,
익숙하지도 않은 동네에서 그것도 휘낭시에 찾겠다고 휘낭시에 파는 디저트 집 검색했을 그녀를 생각하니
요근래 느껴보지 못한 여러 감정들이 가슴 속에서 휘몰아침을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리고 까눌레도 삼"
"까눌레?? 우~~👎"
"아오 진짜😤"

자기가 좋아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까눌레도 사준 센스 넘치는 그녀.

그녀는 잘 먹고, 잘 쉬고, 잘 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휘낭시에는 내가 지금까지 먹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먹을 어떤 휘낭시에보다도 맛있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