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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Australia

호주 54 주차(7/26~8/1)

by eugeenie 2024.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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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금)
길었던 한 주의 마지막 날이다. 오전부터 추위와 싸우며 커피를 만들고 오후에는 마감 즈음에 와서 굳이 커피 먹고 가겠다는 손님들의 주문 때문에 속에서 끓어 넘쳐 오르는 화를 참아가며 일 했다. 커피 만드는 게 내 일이지만 마감 3분 남겨 놓고 먹고 갈테니 머그에 만들어 달라는 손님 주문을 받으면 한숨이 절로 나올 때가 있다. 어쨌든 마감하면서 같이 마감하는 직원과 수다 떨고 밀리지 않는 도로에 행복해하며 퇴근했다.

바리스타 중에 다음 주를 마지막으로 다른 도시로 떠나는 직원이 있는데 벌써부터 아쉽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스케줄이 겹치지 않았지만 지난 한 달은 거의 매일 같이 일 하며 호흡을 많이 맞췄는데, 이렇게 익숙한 사람을 떠나보내야 한다니. 듣자하니 공항에 도착하면 밤 10시가 넘어가서 그 날은 공항에서 노숙 할 거라고 한다. 더 충격적인 거는 이번이 첫 공항 노숙이 아니라는 것. 굉장히 용감한 아이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니, 다음 주에는 그에게 행운을 빌며 작별 인사를 해야겠다. 이번 주말은 조금 바쁠 예정인 게 일요일에 점심 식사 초대를 받았다. 빈 손으로 갈 수 없으니 내일은 가지고 갈 선물을 사러 쇼핑 할 예정. 3주 연속으로 일요일에 일정이 있다. 전 직장 동료와의 만남, 근무 그리고 점심 식사 초대까지. 한 주 한 주가 재미있다.

7월 27일(토)
다음 주 내내 비가 오기 전 마지막으로 날씨가 좋은 건지, 밖에 안 나가면 손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의 맑고 따뜻한 날씨였다. 아침부터 공원, 쇼핑, 장보기 그리도 다시 공원으로 이어진 우리의 일정은 오후 3시가 넘어서야 겨우 마무리가 됐다. 지난 주, 호주에서의 1년을 자축하면서 구매한 와인이 아직 많이 남아, 오늘은 그 와인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안주를 만들어 저녁을 해 먹기로 했다. 중화풍 소고기 볶음, 참치 카나페 그리고 브리치즈 구이가 바로 그것인데, 장 보러 간 마트 냉장고가 죄다 고장나 치즈를 판매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조금 더 비싼 돈 주고 동네 마트에서 브리 치즈를 구매했다.

유튜브에서는 160도의 오븐에서 5분만 치즈를 구우라고 했는데, 식사 준비하는 동안 치즈가 식어 굳을 까봐 끈 오븐에 몇 분 더 넣어놨는데 형체도 없이 녹아버렸다. 레시피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건데.. 아직 치즈 한 덩이 더 남았으니 다음 기회가 있다. 남편은 처음에는 크래커에 구운 치즈를 얹어먹는 것에 반신반의 했지만 브리치즈가 치즈 특유의 꼬랑내가 나지 않아서 그런지 맛있게 잘 먹었다. 다진 대파와 매운 고추가 들어간 참치 카나페도 야무지게 먹었다. 와인은 아직 더 남았으니까 다음에 더 해 먹어야지.

낮에 공원에서는 남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본인의 영어 실력와 커리어에 대해 자신감을 잃은 모습에 속상했다. 한국에 있었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는 말에, 내가 내 욕심 때문에 남편이 호주에 갈 결심을 하게 만든 건 아닌지. 이 곳에서 일 하며 행복한 나와 달리 심적으로 힘들어 하는 남편을 보니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위로라고는, 이 곳에 살면서 한국 생활에 미련을 느끼듯이 한국에 있었다면 호주 삶에 대한 미련을 느꼈을 거라는 말이 전부였다. 본래 인간은 가지지 못 한 것에 아쉬워하고, 그 선택을 후회하기 마련이니까. 아마 호주에 오지 않는 선택을 했다면 그것대로 아쉽고 후회했으리. 그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고 즐기면 되니 남편이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7월 28일(일)
점심 식사에 초대 받아서 이른 아침에 시내에 다녀와 후식 거리를 사 왔다. 이전에 코워커랑 같이 집에서 저녁 먹을 때 함께 먹었던 케이크인데 맛도 좋고 나눠 먹기 좋을 것 같아서 아침부터 내리는 굵은 빗방울을 뚫고 다녀왔다. 집에서 잠시 쉬다가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한 식사 장소에는 잔치국수와 도토리묵 무침 그리고 김치전이 준비 돼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도토리 묵이 너무 맛있어서 게 눈 감추듯 싹싹 긁어먹었다. 김치전은 물론이거니와 잔치국수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았다. 바지 터지는 줄 알았네.

배불렀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 반 값 세일하는 쌀 한포대를 구매했다. 쌀을 생각보다 자주 사는 것 같단 말이지. 이래봬도 10키로 짜리인데. 먹는 양이 많아져서 그런 듯 하다. 일 하고 오면 에너지가 부족해 밥을 많이 먹고 남편은 점심으로 밥을 싸 가니 쌀이 금방 동 날 수밖에.

내일부터 다시 바쁜 한 주가 시작되니 각오 해야지. 그래도 7시 반 까지 출근이니까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도 돼서 다행이다.

7월 29일(월)
7시 반에 출근하면 길이 막히는 경우가 있어 출근 시간을 겨우 맞춘 적이 있는데 오늘은 여유가 있어서 주차장에서 시간을 조금 보내다가 출근했다. 오전에는 여유로웠고 오후에는 바쁘고, 마감 하고 집에 오니 하루가 훌쩍 지나가 있다.

내일은 남편이 출근길에 바래다주고 집에 올 때는 버스 타고 퇴근 할 예정이다. 어차피 밀리는 길, 버스 타고 속 편하게 가는 게 낫다. 주차료, 기름도 아끼니까.

7월 30일(화)
마감 2분 남기고 손님이 줄을 서서 주문을 한다?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 줄이야. 그 와중에 엑스트라 핫, 디카페인, 오트밀크. 옵션도 가지가지다. 덕분에 늦어도 5시 20분이면 끝나는 마감이 두 배가 걸려 40분이 다 되어서야 끝났다. 기진맥진 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 타 캄캄해지는 밖을 바라보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너무 늦게 집에 도착한 나를 걱정하는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전부 다 이야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버스 타고 퇴근 하는 거는 나쁘지 않다. 특정 정류장에서 사람이 꽉 차긴 하지만 내가 타는 정류장이 기점이라 나는 자리를 확보할 수 없으니 문제 없다. 시내까지 가는 길이 밀리지 그 이후로는 평소랑 다를 바 없었다. 45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요즘 차 밀리는 거 생각하면 내가 45분 동안 운전하는 것 보단 훨씬 나은 듯.

내일도 오늘과 같은 일정이다. 마감을 잘 못하고 퇴근 한 것 같아 마음에 걸리는데 오늘 이렇게 바빴으니 이해하겄지.

7월 31일(수)
뭐 했다고 벌써 7월이 다 갔을까.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수월한 날이었다. 아침에 잠깐, 아주 잠깐 다른 지점 도와주러 간 것 말고는. 어제처럼 마감 즈음에 손님이 올까봐 걱정했지만 걱정은 걱정이었을 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 만나는 사람마다 어제 마감 2분 전에 손님이 왔다는 얘기를 몇 번씩 반복했는데, 다들 말만 들어도 끔찍하다는 반응이었다. 직접 겪은 나는 어땠겠니.

오늘은 평소처럼 마감하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버스 타고 귀가했다. 집에 다 도착해서 비가 내리길래 부리나케 뛰어가는데 같은 동네 사는 강아지가 짖어대 깜짝 놀랐다. 안경 젖게 하기 싫어서 안경을 벗고 있던 탓에 강아지 얼굴도 제대로 못 봤네.

그래도 오늘은 사람들한테 시달리지 않아서 좋다. 어제는 사람이 많은 것도 많은 거지만, 요구사항이 까탈스러워서 아주 귀찮았는데 말이다.

8월 1일(목)
세상에 8월? 2024년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아침부터 컨디션이 안 좋아 기운이 없는데 우유도 쏟고 우당탕탕, 어지러웠다. 세상에 이렇게 잔 실수가 많은 날이 있다니. 오늘 하루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지만 버텨냈다. 화요일과 마찬가지로 마감이 평소보다 배로 들었지만.

어제 그제는 5시 30분 이후에 버스를 탔고 오늘은 그것보다 조금 이르게 버스를 탔는데, 퇴근 시간에 제대로 걸린 건지 1시간이나 걸렸다. 몸도 힘든데 사람으로 꽉 찬 버스, 거기다 정신 나간 사람이 버스에 타서 난동 피우는 바람에 골이 울렸다. 아, 이럴거면 그냥 밀려도 차 타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남편은 일정이 있어 집에 없었고, 밥 해 먹기도 귀찮아 대충 라면 끓여먹었다. 혼자 밥 먹으려면 요리하기가 너무 싫다. 입맛도 없고. 내일은 이번 주 마지막 근무일이자 코워커의 퇴사 일이다. 너 큰 경험을 위해 도시 이동한다고 하니 응원의 박수와 함께 보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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