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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Australia

호주 56 주차(8/9~8/15)

by eugeenie 2024.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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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금)
오늘 로스터가 이상했다. 풀 타임으로 일 하는 직원이 두 명이기 때문에 각자 30분씩 쉬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쉬는 시간을 가 있는 동안 백업 해 줄 직원이 없었던 것이다. 잠깐의 혼란 끝에 다른 지점에서 급하게 지원을 왔지만 안타깝게도 나만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금요일에는 쉬는 직원이 많다보니 로스터가 꼬인 모양인데, 보스가 다음 주에는 신경 쓰겠다고 했다.

오후에는 커피 머신 점검이 와서 여유로운 마감을 보냈다. 커피 사 먹으러 온 손님 다른 지점으로 보내고, 코워커 마감하는 거 도와주다보니 평소라면 마감 이후로도 15분 정도 청소하는데 마감 시간에 딱 맞춰 모든 게 끝났다.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 그 어느때보다 평온한 금요일이었다. 행복하게 주말을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8월 10일(토)
일기예보에는 주말 날씨가 안 좋다고 했는데 전혀! 날씨가 너무 좋았다. 어제 퇴근 길에 나무가 울창한 곳을 지나면서 맡은 풀 냄새가 너무 좋아, 오늘은 나무가 많은 곳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늘 가는 공원으로 목적지를 정했고, 가는 길에 작은 커피 숍에서 커피 한 잔씩 사 먹었다. 남편은 오랜만에 아이스라떼를 사 먹었는데, 호주에서 먹는 라떼는 다양한 맛이 나서 너무 좋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라떼 맛있는 커피 숍에 종종 가곤 했는데, 그 맛이 연상되는 맛이었다.

공원에서 두 시간을 넘게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영국에서 요새 폭동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런던 같은 큰 도시가 아닌 외곽 작은 도시에서 백인 이외의 인종을 향한 폭력이 만연하다는데, 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비난의 화살이 백인을 제외한 타 인종에게 향한 것으로 보인다. 근 10년 사이에 영국의 경제 상황이 눈에 띄게 나빠진 것을 보니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가볍지 않은 주제의 이야기를 하다가도 맑고 푸른 하늘을 보면,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일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외국 생활을 하는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도, 이 평화로운 순간에는 그냥 그 분위기에 취하는 것이다. 마치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것 처럼.

내일은 날씨가 안 좋다니까 집에만 있어야겠다. 오늘 하루 종일 바깥 공기 쐰 것으로도 충분하다.

8월 11일(일)
누가 또 날씨 안 좋댔나. 정말 일기예보 하나도 안 맞는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애매하게 점심 시간이 되어 가까운 햄버거 집에서 아이스크림과 햄버거를 포장했다.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할아버지 한 명이 주문을 못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햄버거 매장이 키오스크를 도입하면서 직원을 통한 주문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는데, 아무래도 연세가 있는 분들은 대면 주문이 편하실테니 마냥 카운터에서 직원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마침 카운터에 나온 직원은 옆에 키오스크를 쓰면 된다고 안내했는데, 할아버지가 키오스크 조작이 서툴러 남편이 결국 도움을 드렸다. 우리나라도 연세 있으신 분들이 키오스크 이용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데 호주라고 다를 바가 없다.

벤치에 앉아 맛있게 먹는데 어디서 알고 새들이 슬그머니 우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귀여워서 하나 주고 싶다가도 사람 먹는 거 먹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멈칫하고, 그러다가도 너네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굶는 것 보단 배부른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왔다갔다 했다.

이번 주말은 공원에서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음 주는 진짜 날씨 안 좋다니까 다음 주에 할 야외 활동 이번 주에 다 땡겨서 했다고 생각해야지.

8월 12일(월)
다소 한가한 월요일. 오늘은 큰 일 없이 하루를 마쳤다. 이번 주 로스터에 매니저가 없길래 지난 주 너무 힘들어서 그만둔 건 아닌지 걱정했더니 코로나에 걸렸다고 한다. 요새 다시 유행이라더니 걸린건가,했는데 다른 직원들은 코로나는 핑계고 그냥 쉬고 싶은 것 같다고 말 하기도 했다. 진실은 누가 알겠느냐만, 그에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표정이 정말 너무 안 좋았었는데 부디 쉬고 오면 좀 나아지기를.

오후에는 한 가지 충격 소식을 접했는데, 이제 근무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직원이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떠나야 한다는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꺼냈다. 워킹홀리데이 세컨드 비자를 따러 외곽 지역으로 가야하는데,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찾아와 당장 다음 주 월요일에 떠난다는 것이었다. 갑작스럽지만 축하 할 일이기도 해서 여러 감정이 들었다. 이제 막 정 들려니 떠나네.

이번 주는 수,목요일 모두 일찍 끝난다. 그래도 다른 날 풀 근무라 힘든 건 매한가지. 내일 마감까지 잘 잘려보자.

8월 13일(화)
살면서 많은 인종차별을 겪었는데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물리적인 폭력, 언어 폭력 등 외국에 나와서 살기로 한 이상 내가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했고, 유학 기간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는 인종차별을 느낄 이유가 하등 없었다. 작년에 호주에 오고 나서 역시 특별히 인종차별이다,고 느낄만한 일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근래 들어 인종차별이랄까, 묘하게 사람 신경을 긁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참고 참다가 오늘 드디어 폭발했는데, 인정차별을 당해서 서러웠다기 보단 나의 무력함이 더 서러웠다. 한국에 계속 있었으면 겪지 않았을 일, 그러나 내 선택으로 이 곳에 왔기에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손님한테 욕을 해도 되는가,하는 직업 의식 등. 그 순간에 대처하지 못 한 나의 미련함과 상황의 억울함에 서럽게 울고 말았다. 보스를 비롯해 모든 직원이 내 편이 되어주고 나를 위로해주었지만, 백인인 그들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모를 이 비참함. 아무리 따뜻한 말로 나를 위로한들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 인종차별을 당한 건 거의 10년 전 일인데, 나를 똑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다는 게 아무래도 충격적이었다. 인종차별하는 사람이 미개한거다, 무시다 답이다,라고 하지만 나에게 날아오는 말의 화살을 피할 방법이 없다.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남편에게 털어놓느니 괜찮아졌는데 순간 이 나이 먹고 코워커 앞에서 운 게 너무 창피해졌다.하지만 슬픈 감정을 눈물로 풀어내지 않으면 무엇으로 풀 수 있을까. 아무튼 나이 많이 먹고 모두에게 걱정을 받았던 하루였다.

8월 14일(수)
원래대로라면 일찍 끝나는 날인데 다른 지점에 마감 할 사람이 없어서 내가 마감을 하게 됐다. 거의 2주만에 다른 지점에서 오랜만에 일 하는 거라 어색했는데, 내가 없는 사이 새 메뉴도 나오고 자잘하게 바뀐 게 많아 적응하는 데 어려웠다. 마감 30분을 남기고는 비가 세차게 와서 아무도 안 올 줄 알았더니 그 굵은 비를 뚫고도 커피 마시겠다고 오는 사람들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커피가 좋으신가요. 비가 와서 그런지 퇴근길이 너무 막혔다. 힘든 하루였지만 그래도 저녁 맛있게 먹고 내일을 위해 잘 자야지.

8월 15일(목)
광복절인 줄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하루하루가 똑같으니 점점 날짜 감각이 사라지는 듯 하다. 오늘은 오후 2시에 끝나서 집에 와 여유있게 요리 할 수 있었다. 남편이 5시부터 7시까지 온라인 수업을 듣느라 저녁을 따로 먹었다. 온라인 수업에 출석 체크를 안 하다보니 총 인원 40여명 중 수업 접속 인원은 12명 뿐이었다고 한다. 너무들하네 정말.

일찍 끝났지만 집에서 특별히 한 거는 없고, 그냥 누워서 쉬다가 밥 먹은 게 전부였다. 그래도 늘 노을 보면서 퇴근하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퇴근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길도 안 막혀서 운전도 편안했고.

내일은 일주일의 마지막 근무일,은 아니고 이번 주는 일요일에도 일을 나가야 한다. 매니저도 없는데다 원래 근무하는 애가 시프트 커버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4시간 뿐이니 괜찮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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