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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Australia

호주 43 주차(5/10~5/16)

by eugeenie 2024.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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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금)
아침 오픈 준비 금방 잘 마쳤는데 웬걸 손님들이 물 밀리듯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통 9시에서 9시 30분 사이는 한가해서 그 시간을 틈타 잡담하면서 쉬는 시간을 가지는데 오늘은 그 30분이 없었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30분. 오픈만 하고 집에 가는 시프트라 가뜩이나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인데 바쁘기까지 했으니 오늘 오전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오후 일정은 특별할 것 없이 장 보고 집에서 책 읽고 낮잠 자다가 저녁 먹고 쉬었다. 어딜 가고 싶었는데 갈 데가 마땅치 않아 오후 시간을 집에서만 보낸 게 아쉽다. 내일도 일정이 없는데 책이나 마저 읽어야겠다.

5월 11일(토)
당뇨를 앓는 건 아니지만 혈당 스파이크를 방지하는 식사를 하려고 하는 편인데, 오늘은 혈당이 너무 높아 남편과 함께 낮시간 동안 기절했다. 우리의 고혈당 이야기는 오늘 오전부터 시작된다. 아침 먹고 도서관에 가서 남편은 시험 공부를, 나는 책을 읽기로 하고 2시간 가량 공부한 뒤 근처 버블티 집에서 흑당 버블티를 구매, 공원까지 15분 가량 걸어가 돗자리 펴고 아몬드 크로아상과 초콜릿 머핀을 먹을 계획을 세웠다. 문제가 없는 계획이었지만 생각보다 내가 책 읽는 시간이 길어져 둘 다 뱃 속이 텅텅 빈 상태로 흑당 버블티에 크림과 초콜렛이 가득한 빵과 머핀을 먹게 된 것이 문제였다. 아침 먹은지 시간이 꽤 지난 상태였으니 혈당은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테고 흑당 버블티를 시작으로 엄청난 각도로 혈당이 치솟았으리라.

엄청난 당류 섭취와 쫄쫄 굶었다가 식사를 해결한 것까지 더해 갑자기 졸음이 몰려왔고 집에 돌아온 직후 남편과 낮잠을 잤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 나지 않는 것을 보면 사실상 기절과 다름 없었을 듯.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낮잠을 마치고 눈을 뜨니 밖은 이미 어둑어둑 해 있었고, 과한 점심 때문인 건지 배도 고프지 않아 저녁은 생략. 과한 낮잠에도 불구하고 잘 시간이 되니 졸리다. 잠은 정말 자도자도 끝이 없구나.

한편 오늘 근무했던 코워커들은 최악의 날을 보냈다고 한다. 아침부터 보스가 와서 옆에 세워놓고 자기가 하는 걸 다 보라고 해서 평소 일 하던 대로 일을 할 수가 없었다고. 시간은 두 배 이상으로 걸리고, 손님은 많고, 결국 쉬는 시간 30분도 제대로 가지지 못 했다고 한다. 늘 반복해서ㅠ일을 하는 코워커들에게는 그들만의 주말 루틴이 있었을텐데 보스라는 예상치 못한 복병으로 인해 그 루틴이 깨졌으니 평소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라고 본다. 지난 주 난리치고 가서 이번 주는 조용하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다음 근무 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다.

5월 12일(일)
시험기간, 팀플 과제로 바쁜 남편은 매주 일요일마다 하던 봉사활동도 잠시 멈추고 시험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청소하고 집에서 쉬다보니 하루가 다 갔네.

한 동안 읽고 있던 책을 어제 다 마무리해서 오늘부터는 가볍게 에세이 읽어보려고 한다. 호흡이 긴 소설을 읽은 건 오랜만이라 그런지 힘들었다. 몰입해서 읽다 보니 감정소모도 좀 있었고. 내일을 위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자야겠다.

5월 13일(월)
오전에 보스가 심각한 얼굴로 비즈니스 미팅을 가지더니 웬일로 우리에게 잘 하고 있다며 칭찬을 하고 갔다. 여기서 일 한지 꽤 됐는데 처음이다. 맨날 잔소리만 듣다가 좋은 소리 들으니 저 사람이 어디가 아픈가,했다. 아마 미팅을 기분 좋게 끝내서 그런 거겠지.

보스도 기분 좋게 떠나고 가게도 평범하게 바빠서 일 할만 했다. 우유가 부족한 바람에 마트에 다녀와야 했던 게 번거로웠지만 손님이 없었으니 다녀올 만 했다. 바쁠 때는 갈 시간도 없으니 뭐든 미리 준비해놔야 한다. 일은 잘 했지만 마트에서 너무 덤벙대는 바람에 혼자 수치스러웠다. 아무 생각 없이 필요한 거 담았더니 돈이 부족해서 하나 빼 달라그러고, 영수증을 잊어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고. 정신을 어디다 빼 놓고 다녔던 건지.

오늘 무사히 넘겼으니 내일도 무사히 넘기기를.

5월 14일(화)
점심 러시가 크게 한 번 있었고 약 2시간 동안 손님들이 끊임 없이 찾아왔다. 한 명이 여러 아이템을 주문하면 그 한 명의 주문 처리하는데만 시간이 꽤 걸리는데, 그런 주문이 러시에만 여러개 있던 바람에 아주 난감했다. 뭐, 손님들이 줄 서서 기다리면 아무래도 마음이 급해지긴 하지만 내 손은 두 개 뿐인 걸. 기다리기 싫으면 다른 가게에 가시라,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주문을 처리했다. 이런 큰 러시는 아주 오랜만에 겪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는데 나중에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이렇게 바쁠 수가 있는 거구나. 바빴던 덕분에 시간은 잘 갔는데 아주 녹초가 돼 버렸다.

보스가 와서 정신적으로 힘들면 그 날은 덜 바빠서 좀 살만하고, 보스가 안 와서 좋은 날에는 엄청 바쁘다. 결국 총량은 똑같다.

5월 15일(수)
너무 피곤했던 탓일까 간밤에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아니, 잔건가? 안 잔 건가? 헷갈릴 정도로 얕은 잠을 자다 깨다 반복한 탓에 아침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도 정신 부여잡고 잘 일 해보려는데 배달이 너무 늦게오는 바람에 디저트 사러 온 손님들 몇 명을 빈 손으로 보내버리고, 보스는 배달이 늦었느니 자기가 도와주겠다며 한참을 있다가 돌아갔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잔소리를 해대는 통에 아침부터 에너지 소모가 컸다. 제발 좀 내버려둘래 우리를?

점심시간에 잠시 러시가 있었던 걸 제외하면 평범한 하루였다. 아침부터 멘탈이 탈탈 털린 바람에 무슨 정신으로 마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걸 다 끝내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집에 와서 홀가분한 기분으로 쉬고 운동하고 오늘는 푹 잠을 자보려고 한다. 아, 장편 소설 완독하고 빌린 에세이는 이탈리아 작가의 에세이인데 나름대로 재미있다. 이탈리아 역사 인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상황 비유나 과감한 언행이 꽤 괜찮다.

5월 16일(목)
오늘도 배달 늦어서 보스가 오면 어쩌나 고민하면서 오픈 듀티를 속도 올려 순식간에 해냈다. 다행히 하루종일 보스는 가게에 오지 않았고, 지난 이틀과 달리 러시도 없어서 아주 평화로운 하루였다. 매니저가 오후에 오는 바람에 마감 듀티를 일찍 시작하는 게 눈치 보였지만.. 매니저는 가게에 오기 전에 보스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 한 후에 오는데, 오죽 마주치기 싫으면 저럴까 싶다. 뿐만 아니라 이전과 달리 본인이 보스에게 가지고 있는 불만사항을 우리에게 털어놓기까지 한다. 그 동안 쌓였던 게 많았던 데다 우리도 보스에 대해 알건 다 알 정도로 경력이 좀 됐으니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 같다.

요즘 날이 더운 것도 아닌데 입맛이 없다. 배가 고프니 먹긴 먹는데 먹고 싶은 것도 딱히 없고 그렇게 먹어대던 군것질도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저녁 요리하는 게 정말 귀찮은데, 남편 생각하면 앞치마 메고 요리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어땠더라. 그 때는 엄마한테 밑반찬 받으면 요리하기 싫은 날 반찬으로 떼우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밑반찬 없이 매번 요리해야 하니 더 귀찮은가보다. 먹고 싶은 걸 못 먹어서 힘든 건 전혀 없지만 식탁 위에는 늘 뭔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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