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금)
언제나 기분 좋은 금요일이다. 이번 한 주는 보스 대신 매니저가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버틸만 했다. 한 시간 일찍 끝나고 남편과 마트에서 장을 봤다. 이번 주는 닭고기를 가지고 맛있는 요리를 좀 해 보려고 닭고기도 사고 정말 오랜만에 스팸도 샀다. 호주 온 이래로 스팸을 먹은 적이 없는데 한국처럼 인기 식품이 아니라 잘 눈에 띄지 않는 매대에 몇 개 들여놓지 않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저녁으로는 스팸을 넣은 고추장찌개를 해 먹었는데 소주 생각이 절실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소주 한 병의 가격은 약 10~12불 사이로 원화로 치면 대략 8,500원~10,000원 사이라고 볼 수 있다. 차마 선뜻 아무렇지 않게 구매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떠나지 않는 소주에 대한 욕구를 간신히 집어 넣고 동네 산책 하면서 동네 강아지들에게 다시 한 번 인사하고 돌아왔다.
완연한 가을 날씨 덕분인지 책도 잘 읽히고 공원에서 돗자리 깔고 누워있고 싶은 욕구가 일고 있다. 내일은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낮에는 남편과 밖에 나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3월 23일(토)
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 따스한 햇살. 삼 박자가 잘 맞는 날씨를 두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 쇼핑센터에 가서 돗자리를 사서 공원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큰 나무 그늘 아래나 햇빛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저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 두 잔을 사 온 우리도 한 곳에 자리를 잡아 돗자리 위에 누웠다.
바람이 제법 셌지만 누워서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꽤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가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있지만 공원에 누웠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한 시간 정도 누워 하늘 구경도 하고 책도 읽다가 배가 너무 고파서 집으로 돌아와 닭곰탕을 해 먹었다. 인스턴트팟의 고압력 덕분에 고기가 부드럽고 육수도 잘 우러나와 몸보신을 제대로 했다. 육수가 꽤 많았는데 남편과 국물 리필하면서 한 솥을 다 해치웠다.
저녁에는 시내에서 페스티발이 있다고 하길래 코워커와 만나 다녀왔다. 남편도 같이 갈까 했으나 아무래도 코워커가 나와 단 둘이 있는 게 더 편할 것 같아 나 혼자만 다녀오겠다고 했다. 노점에서 맛있는 음식도 사 먹고 사람들 춤 추는 것도 구경하고 축제가 끝난 후에는 근처 산책 하면서 인생살이에 대한 이야기도 한참 나눴다. 코워커는 내일 일 해야하고 밤 바람이 생각보다 세서 더 오래 붙잡을 수는 없었다. 남편에게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해 코워커 바래다 주고 집에 왔더니 글쎄 이웃집에서 정말 큰 소리로 음악을 틀고 파티를 하고 있다. 어쩐지 동네 입구부터 차가 많더라. 잠이나 잘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
3월 24일(일)
어젯밤 다행히 너무 피곤해서 시끄러운 파티 소리에도 불구하고 잘 잤다. 오늘 아침은 집 근처 공원에서 돗자리 깔고 누워 시간을 보내다가 한인마트에 가서 김치를 사 오기로 했다. 오전 9시 30분 경에 도착한 공원에 벌써 차가 줄을 서 있어 주차 할 공간이 없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주차 자리를 찾아냈다.
공원 한 바퀴 돌다 양지 바른 곳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어제처럼 책을 읽었고, 은은하게 풍겨오는 풀 냄새와 푸른 하늘을 보며 내가 자연을 만끽하고 있음을 느꼈다. 바람이 세게 부니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는 모습도 구경할 수 있었고,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며 그 그림자도 같이 흔들리는 덕에 얼굴에 햇빛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바람은 제법 차갑고 셌지만 햇빛이 그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내 몸을 따뜻하게 데워줬다.
두 시간 정도 누워있었을까, 배도 고프고 더 늦기 전에 김치를 사러 가야해서 자리를 정리했다. 더 늦게까지 있고 싶었는데 그건 다음을 기약하기로. 점심 먹은 후에는 청소하고 일찍 저녁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번 주말은 야외활동이 많았다. 공원에 누워있는 게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돗자리 들고 공원 투어를 해 볼까 한다.
3월 25일(월)
토요일, 일요일 기분 좋게 보내고 맞이한 월요일. 아침에 보스가 왔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였고 음료 두 잔만 가져갔다. 매니저는 어김없이 와서 잔소리 하고 다른 지점에 물건이 없다면서 가게에 있던 재고 이것저것을 가져가는 바람에 급하게 물건 발주를 해야 했다. 이런 일이 있었던 것 치고는 정신 없던 하루는 아니었고 한 가지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면 드디어 새로운 제빙기가 도착했다는 것이다. 한창 필요할 때는 안 갖다 주더니 날씨가 쌀쌀해지니 제빙기를 갖다준다니. 늘 얼음 사다주던 쉐프랑 혀를 끌끌 찼다.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운동 하고 책 읽고 어떤 책 빌릴까 고민하는 와중에 남편이 많은 이북을 보유하고 있는 전자도서관 회원이라 선택지가 대폭 늘어서 행복했다. 더 이상 읽을 거리가 없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무려 천 삼백권이 넘는 소설을 이북으로 빌릴 수 있게 돼서 좋다. 고민 없이 이것도 읽고 저것도 읽어봐야지.
3월 26일(화)
수 년 전에 친구 생일 즈음 해외에 있었는데 그 해에 친구 생일을 까먹어서 석고대죄하는 음성 메세지를 여럿 보냈다. 그리고 올 해, 그녀의 생일을 다시 한 번 깜빡하고 오늘에서야 떠올려버렸다. 음성메세지는 아니지만 사죄하는 의미의 카톡을 수차례 보내고 어서 나에게 선물을 뜯어가라고 했다. 하필 그녀의 생일을 잊은 두 번의 경험이 모두 내가 해외에 있을 때라니.. 해외 나오면서 캘린더를 바꿨는데 기존 등록 정보가 반영이 안 된 것 같다.
개인적인 해프닝은 이렇고 오늘 마감 전에 매니저가 와서 제빙기를 설치하고 갔다. 사실 바쁘지 않아서 일찍 문 닫고 우리끼리 마감 청소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매니저가 갑자기 방문해서 뭐 하나 우리 계획대로 할 수 있었던 게 없었다. 그렇지만 제빙기 설치 했으니 더 이상 얼음으로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게 돼 좋다.
어제 남편의 도움으로 읽고 싶은 책을 잔뜩 빌릴 수 있게 돼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데뷔작을 빌려 한 시간만에 완독했다. 그 다음 책도 얼른 읽어야지.
3월 27일(수)
이번 주 금요일부터 호주에서는 부활절을 기념한 공휴일이 다음 주 월요일까지 계속되는데, 하루 이틀 정도 휴가 쓰고 다들 놀러간 건지 오늘 하루 정말 조용했다. 매일 바쁘면 너무 지치니 이런 날도 있어야지. 퇴근 할 때는 그 맛이 늘 궁금했으나 시도는 해 보지 않았던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챙겨 집에서 저녁으로 대신 했다. 수요일 저녁은 남편의 저녁 수업 때문에 저녁 시간에 혼자 있어야 하므로 요리하기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샌드위치는 생각보다 맛있었으나 한 번 경험해 본 것으로 충분한 맛이었다. 신선한 야채의 맛이 좋지만 매일 먹을 정도는 아니랄까. 어쩌다 한 번은 생각날 것 같다.
금요일부터 가게 문을 닫기 때문에 내일 하루만 일 하면 된다. 다음 급여는 굉장히 부족하게 받을 것 같지만 4일 연속으로 쉴 수 있어서 좋다. 쉬는 동안 여기저기 많이 다녀와야지
3월 28일(목)
근 2주만에 아침부터 바빴다. 아마 내일부터 시작 되는 공휴일로 많은 사람이 여유가 생긴 건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손님이 많이 찾아왔다. 오후에는 장 보고 집에 와서 한 해변 선셋 마켓에 남편, 코워커와 셋이 놀러갔다. 선셋 마켓이 목요일마다 열리기 때문에 다음 날 일찍 출근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그 동안 가지 못 하다가 마침 내일 모두가 쉬는 날이니 지금이 기회다,는 마음으로 다녀왔다.
그런데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던 건지 평소였다면 널널했을 주차장이 이미 만차였다. 돌아 나와서 다른 주차장을 찾아보자며 한 바퀴 도는데 마침 한 차가 자리를 비웠고 운 좋게 그 자리를 우리가 차지할 수 있었다. 올 해 운 다 썼다고 해도 좋았을 만큼이었다. 늘 해질녘 쯤에 사람으로 가득 찬 해변이지만 오늘만큼은 더 많이 붐볐다. 다 같이 앉아서 노을 구경하고 푸드트럭을 돌아보며 각자 먹을 것을 사서 돗자리 깔고 먹기로 했다. 나와 남편은 팟타이와 오징어 튀김을 코워커는 화덕 피자를 선택했는데 우리 음식이 더 빨리 나와서 코워커와 같이 피자를 기다렸다. 코워커 주문 번호가 89번이었는데 87, 88까지 연속으로 잘 부르더니 갑자기 번호를 안 부르는 바람에 코워커가 약간 불안해 하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무사히 음식을 받아 잔디밭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음식을 나눠먹고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바닷바람이 점점 세고 차가워지는 통에 한 시간만에 돗자리를 접어야했지만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셋이서 재미있게 놀아서 아쉽지 않았다.
오늘 느낀 것이 있다면 푸드트럭에서 먹는 것 갖고 장난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팟타이가 조금 비싼 편이었는데 음식을 받았을 때 전혀 그 돈이 아깝지 않았을 정도로 양도 많도 맛도 좋았으며 그것은 피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간혹 바가지가 잔뜩 씌어진 축제 음식이 있는데 그것과 비교했을 때 오늘의 푸드트럭은 훌륭했다고 할 수 있다.
차가운 바닷바람 잔뜩 맞고 따뜻한 이불 속에 있으니 잠이 쏟아진다. 내일은 늦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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